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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맹고기록

사공이 많아 산을 넘던 그 때

by '김맹고' 2019.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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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대학 시절, 동아리가 있었다.

사실 반수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는 엄연한 '무동'이었다. 無(무)동아리 라는 뜻다. 그러다 반수 생각을 접고,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니, 대형과라 친한 동기도 적었고, 학생회를 하자니 지나치게 외향적인 사람들의 소굴 같아 내키지 않았다. 대외활동을 충분히 하고 있던 상태라 적당히 소속감을 가지고 열정을 쏟아붓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나중에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적을 수 있는 그런 단체에 들고 싶었다. 애초에 그다지 순수한 목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들게 된 동아리는 엄연히 말하자면 '동아리'는 아니었다.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학교의 지원을 받아 능력을 활용하여 하나의 단체로 독립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성과를 인정받으면 장학금 또한 지급하는 '리더십그룹'이라는 사뭇 다른 단체였다. 1학기에 부원을 모집하는 일반적인 그룹과는 달리, 2학기에 부원을 모집하는 유일한 동아리(편의상 동아리라고 하겠다.)었기에 이 리더십 그룹은 반수 생각을 접은 신입생으로서 가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렇게 교내 리더십그룹인 한국어 교육 봉사단으로 2년간 활동했다. 선배들은 헛된 권위의식에 찌든 선배 몇 명을 제외하고서는 선배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밥약(밥 약속)이나 과 내 선후배 간 교류가 (거의)없는(우리 학교는 그냥 친한 언니동생으로 지낸다. 선배님, 후배님 개념보다 거대한 학문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의 개념이 더욱 강하다) 대학생활에서 선배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한국어 교육에 흥미는 없었다. 단지, 영어를 의미 있게 활용하는 활동임에 감사했고, 과 동기들보다 더 진한 연대감을 느끼게 한 스터디그룹원들을 만났으며, 나를 그 어딘가에 소속되게 만들어 결속력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 애증의 단체가 생각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며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단원들과 함께 기존의 수업 체계를 바꿨던 일이다. 수습단원일 당시 선배들의 수업을 참관하며 들었던 의문은 한국인이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수업내용과 그 수업에 사용되는 교재의 출처였는데, 정단원이 되고 난 후 단원들과 가진 첫 회의에서 이 문제를 건의했고, 단원들의 의견을 모은 끝에 두 가지 장기 목표로 이어졌다. 11년간 이어져 온 수업 커리큘럼을 변경하는 것과 교재를 전면 개정하는 것.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문화부, 교육부, 홍보부로 부서를 나눠 업무를 분담하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일사천리였다. 교육학 전공인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타 대학 한국어학당 교재와 TOPIK 시험 빈출 어휘를 참고하여 교재를 제작했다. 레벨2 담당 선생님이었던 나는 단원들 간 한국어 스터디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최신 이슈를 반영한 내용으로 수업을 준비하며 외국인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업에 참여할 방법을 고민했다. 이사하는 날 왜 자장면을 먹는지, 9월에는 왜 이사시즌인지, 자장면은 한국음식인지 아닌지, 등. 또한, 홍보 부원으로서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새 커리큘럼과 수업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으며 온라인상에서도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수행' 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자발적인 감이 더 컸지만 말이다.

그 결과 한 반에 다섯 명 안팎이던 수강생은 두 달 만에 스무 명으로 증가했다. 내 기억으로는 나이지리아 대사관 부인, 그러니까 온 갖 외국인 주지사, 대사, 영사 부인들의 학습장소가 된 셈이었다. 학교 위치도 대사관과 가깝겠다, 그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리더십그룹을 담당하는 국제언어교육원에서는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강의실로 활동 장소를 옮겨주었고, 개선된 환경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참 뜨거운 여름, 따뜻한 겨울을 보냈고, 자타공인 한국어교육봉사단의 `르네상스`였다는 말을 들으며 활동을 수료할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끝없는 탐구 정신과 소속된 팀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팀원들과 함께 목표를 이뤄낸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직접 만든 나만의 네트워크이자 나의 바쁜 청춘을 대표하는 활동. 날이 추워진 지금 문득 그 날이 생각나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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