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를 통해 해석하는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터널>
터널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경계의 영역이다. 이 터널 앞의 석상은 양쪽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치히로의 가족이 온 방향, 즉 의식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터널 저편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온천여관의 의미>
무의식의 세계는 흥미롭게도 온천여관으로 설정되어 있다. 명확히 일본 역사와 전통의 근간이 되는 문화적 아이콘 중의 하나인 온천여관은 정화와 재생이라는 종교적 의식과 관계가 깊다. 그곳은 계악과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장소인 동시에 거대한 아기와 세 개의 굴러다니는 머리통의 기괴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오물신과 가오나시 등의 요괴들과 신들이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아가 온천여관은 가장 근본적인 형태로 오염이 들어찬 근현대 일본 사회의 표상이기도 하다. 심지어 “유곽으로서의 목욕탕”이라는 해석까지 가능하다. 그곳을 찾는 손님은 모두 남자(남신)뿐이며, 실제로 메이지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공중 목욕탕에서 공공연히 매춘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근거 없는 해석이 아니다. (미야자키는 공식 인터뷰에서 해당 의도는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천은 원래 환자의 치유, 즉, 정화와 재생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온천여관은 소외되고 분열된 주체의 상징계적 공간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많은 손님으로 북적이는 온천여관, 사금을 뿌려대는 가오나시와 그를 왕처럼 모시는 온천여관의 종업원들. 보물로 가득찬 유바바의 방 등은 버블 경제 시기의 현대 일본을 연상케 한다. 온천여관에 닿기도 전에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1980년대 버블 경제 시기 일본인들의 탐욕스런 욕망을 투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듯이 터널 너머에 전개된 황량한 테마파크의 풍경에 대해 치히로의 부친은 “이런 테마파크가 1990년대 무렵 여기저기 많이 세워졌다가 버블 경제가 무너지자 모두 망해버렸어” 라고 말한다. 그 밖에도 부친의 고급 승용차나 전학하는 치히로가 받은 꽃다발 등도 버블 경제를 표상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유바바>
한편 온천여관의 주인장 유바바는 제니바의 쌍둥이 동생이다. 이들의 관계를 둘러싸고 유바바=자아, 제니바=초자아, 유바바의 아들 부우=이드 로 보는 해석도 있다만, 그보다는 대타자의 관점에서 유바바와 제니바를 해석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이 마녀 자매의 이름은 공중목욕탕을 뜻하는 센토()에서 따온 것이다. 제니바와 유바바의 한자명 첫글자를 합친 것이 바로 센토 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자매가 온천 여관이라는 상징계의 대타자로서 그곳을 지배하는 법의 두 이름임을 시사한다.
[참고 - 일본정신분석: 라캉과 함께 문화코드로 읽는 이미지의 제국, 박규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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