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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메이션과 2D와 지적인 덕후/2D에 대한 짧고 얕은 끄적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제 2탄 (이름을 상실하다)

by '김맹고' 2019.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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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관통하는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그건 '이름'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치히로는 온천여관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센'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화 초반, 친구들이 치히로에게 건넨 꽃다발에는 치히로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나온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이름을 잊어버리면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해주지만 정작 본인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여 유바바의 수하인으로 묶여 있는다. 치히로는 제니바에게 본인의 본명을 알려준다.

과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안에서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제 1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제 1탄

키워드를 통해 해석하는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터널> 터널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경계의 영역이다. 이 터널 앞의 석상은 양쪽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치히로의 가족이 온 방향, 즉 의식의 세계이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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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상실하다>

상징계는 무의식의 주체가 구성되면서 동시에 소외되는 장소로, 그곳에 머물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하다.우리는 모두 상징계 안에서 이름을 부여받아 주체가 된다. 이름을 잃거나 되찾는 이야기 혹은 새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지배 권력을 행사하는 이야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름을 상실함으로서 유바바는 고용인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욕망의 주체는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그 결여를 상징하는 것은 이름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온천 여관의 주인 유바바는 계약을 맺으며 치히로라는 이름을 빼앗고 대신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강요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선이 깔려 있다. 치히로라는 이름 안에 이미 센(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센’은 ‘많음’을 뜻하는 동시에 고대 일본 풍습에서 변소에 빠진 아이에게 붙여진 이름이기도 한다. 한편 ‘히로’ 란 양손을 좌우로 벌렸을 때의 거리를 가리키는 동시에 ‘찾다’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치히로라는 이름에서 대상화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천길만길’(무수히 많은 히로) 같은 어떠한 발견을 유추할 수 있다.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등장인물 중 이름의 상실과 관련된 캐릭터는 비단 이런 센과 치히로뿐만이 아니다. 하쿠와 제니바도 이름의 상실과 관계가 깊다.

<하쿠>

하쿠는 원래 어린 치히로가 강물에 빠졌을 때 그녀를 구해준 강의 신. 그는 유바바에게 이름을 뺏기면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길을 망각하게 되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치히로에게 알려준다. 하쿠의 말대로 치히로는 겉으로만 센으로 행세하고 끝가지 본명을 기억하고 지키려 애쓴다. 많은 이가 놓쳤을법한 부분이지만, 치히로는 유바바가 내민 계약서에 자신의 본명을 틀리게 기입했다!!  오기노 치히로의 첫 글자 중에서 화로 적어야 할 것을 견으로 적은 것. 이것은 치히로의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하쿠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은 하쿠 자신의 이름을 상실하고 유바바의 지배를 받는 캐릭터다.

가장 첫번째 글자를 일부러 틀리게 적었다

치히로는 제니바의 공격을 받아 빈사 상태에 빠진 하쿠에게 경단을 먹여 안에 있던 마법의 벌레와 제니바의 도장을 토해내게 한 후, 하쿠를 구하기 위해 가오나시와 함께 늪의 바닥에 사는 제니바를 찾아가 도장을 돌려준다. 이 때 바다를 건너가는 전철 안 풍경이 인상적이다. 얼마 안 되는 승객들은 치히로와 가오나시를 제외하고 모두 반투명의 그림자 형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완전히 이름을 빼앗겨버린 소외된 주체를 묘사한 듯 싶다. 이윽고 제니바 앞에 선 치히로는 본인의 본명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자 제니바가 “좋은 이름이구나. 소중히 하거라” 라고 충고한다. 그리하여 하쿠가 치히로 덕분에 제니바에게 용서받고 자신의 본명인 ‘고하쿠(니기하야미고하쿠누시)’ 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

 

 

[참고 - 일본정신분석: 라캉과 함께 문화코드로 읽는 이미지의 제국, 박규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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