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소년 점프의 역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요즘 알고 있는 일본 만화를 말해보라 하면, <원피스>, <나루토>, <명탐정 코난>, <하이큐> 정도가 나온다. 이름만 대면 어디선가 들어봤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부분의 장편 만화는 <주간 소년 점프> <주간 소년 매거진> <주간 소년 선데이>라는 주간 소년 잡지에서 배출해냈다. 발행부수를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주간 소년 잡지는 1950년대 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항상 일본 만화계의 중심에 있었다. 전성기에 비하면 꽤 줄긴 했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대략 2018년 7-9월 발행 부수만 봐도 <점프>가 177만 부, <매거진> 76만 부, <선데이> 31만 부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주간 소년지의 인기 만화는 대체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보다 큰 대중성을 얻는 경우가 많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TV의 지배력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랬기 때문에 이 시기를 향유했던 세대들의 최대 공통 체험이 소년 만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전후 사회에서 만화는 언제나 잡지를 기점으로 한 소년소녀 문화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인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까>
여기서 제기된 것이 인물이 성숙해져가는 과정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전후 일본에서는 1960년대 무렵부터 이미 만화 문화가 보급되었는데, 대부분 소년소녀용 잡지에 게재되고 있었기에 대상 독자의 연령층에 맞추어 등장인물의 성장을 그려야만 했다. 그 결과 '성숙'을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전후 만화의, 특히 소년 만화의 한가운데 자리하면서 전후 소년 만화의 성격을 규정했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독자들을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우노 츠네히로, 2018]
그런데 이 '소년만화'에는 조금 번거로운 측면이 있다. 소년 만화는 말 그래도 성장의 궤도에 있는 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려지는 이야기이기에, 이런 작품은 창작자의 자각을 넘어선 부분에서(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청소년은 아니지 않겠는가), 불가피하게 어른이 되는 법이나 성장하는 법, 그러니까 멋(?)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거 아닌가? 드라마틱하고 극적이게 그려내면 될 것을 뭐가 어렵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후의 일본 사회는, 강하고 멋진 것이 패전의 기억과 결합되기에 곧이곧대로 동경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얼핏하다 세계사적으로 악으로 여겨지고 있는 전쟁 전의 군국주의 이미지와 결합되어버릴 수도 있고(지금으로 말하자면 진격의 거인..) 더 나아가 그 군국주의 일본은 전쟁에서 진 패전국가였으니 말이다. 패전의 결과로 군대 보유가 헌법으로 부정되고, 2차 대전에서도 패전국이 되었기에 '싸워 이겨 올바른 가치를 지켰다'라는 명제의 역사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강하고 굳센 존재가 정의를 지킨다'라는 것을 만화에 반영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즉, '우리는 강하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라는 지점에서 출발했던 것이 전후 일본 만화의 자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은 왜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까?>
일본에서 만화는 당연히 아이용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마련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만화는 어느 나라에서든 정치에 대한 풍자로서 시작되었고, 그 매체를 소비하는 대상은 대체로 성인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후 일본에서는 초중고생부터 대학생, 젊은 사회인의 읽을거리로써 발전해 갔는데, 이 지점에 일본 만화 표현의 특징 중 하나가 있다.
일본의 만화 문화는 젊은 층을 겨냥한 것이기에 아무래도 '성장/성숙의 코드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런데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는 기호/도안이기에 성장을 그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즉, 캐릭터가 성장해서 도안(인물의 외관)이 바뀌어 버리면 동일한 캐릭터라고 인식시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있는 스토리를 제시하거나, 도안을 미묘하게 조절해서 독자에게 비주얼 레벨에서 직감적으로 '같은 캐릭터다'라고 느끼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명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대의 형상을 한 60대가 주는 기괴함>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는 기호/도안 이기 때문에 성장을 그리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부분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드래곤볼>은, 주인공 오공의 성장 스토리다. 연재 과정에서 예전부터 읽어오던 독자들에게서 '정 때문에 본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린 연령층에서의 인기는 여전히 높았기에, 연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드래곤볼>이 독자들을 잃고 매너리즘의 길에 들어선 내막을 생각해보면, 그 원인은 캐릭터에 있었다. 1980년대에 오공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10대 초반이라는 설정으로 3등신 정도의 캐릭터였다. 그러던 도중에 갑자기 키가 자라며 20세 정도의 외모가 되고, 그 이후로는 외모가 고정된다. 이야기 종반에서는 히로인인 부루마가 50~60대의 여성으로 그려지는데, 비슷한 연배인 오공은 손자도 있지만 "사이야인은 우주인이라서 늙지 않아"라는 말을 하며 20대 정도의 외모를 유지한 채 등장한다. 이 부분에 <점프> 전체가 안고 있던 문제가 드러나 있다. 설정면에서는 나이를 먹고 결혼해서 자식뿐 아니라 손자까지 있고, 새로운 적을 쓰러뜨리며 전투 능력도 점점 올라갔는데,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 이야기상의 설정만 진행되어 버리는 <점프>의 작품연출법(dramaturgie) 의 기괴함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배틀 만화의 붕괴>
1990년대에 들어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가 메가히트하면서 <점프>의 발행부수는 653만 부를 기록한다. 이ㄹ본인 20명 중에 1명이 사고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그 황금기는 1995년경을 경계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직접적인 원인은 <드래곤볼><유유백서><슬램덩크> 의 연재가 잇달아 종료했기 때문이었다. 시기적으로는 버블 경기 붕괴 이후라서 '일본은 더이상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문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는데, 그 후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불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만화 등의 서브컬처 스토리에서도 '내리막 정서'가 강해진다.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 <점프>의 재생과 소년 만화의 끝, 우노 츠네히로, 2018]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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