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지나치게 정의롭고 의롭거나, 아픔이 있어도 바보같이 헤실거려 주변 인물들로부터 따뜻한 태양 내지 햇살같은 존재 역할을 하여 주변환경을 고무시키는 주인공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특히나 성장하여 결과를 내는 만화의 경우 더욱 주인공의 그러한 존재감이 두드러지는데, <하이큐>의 히나타, <진격의 거인>의 에렌(요즘은아저씨가 되었으니 논외일수도), <나루토>의 나루토, <식극의 소마>의 소마, <유희왕>의 유희, <쿠로코의 농구>의 카가미 등이 그 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왜 이러한 주인공을 보며 답답함을 느낄까? 주인공에 일관성 있는 행동에 독자들이 지치는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정-노력-승리의 공식과 토너먼트 배틀 형식에 대한 의구심>
실제로 꽤 많은 사람이 '만화'라는 말을 듣고 처음 떠올리는 것이 <주간 소년 점프>의 배틀 만화가 아닐까 싶다. 잡지 분야 전체를 봐도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것이 <점프>고,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만화책 역시 <점프>다. 그런 <점프>의 배틀 만화는 일반적으로 중후한 테마성이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아이, 젊은 층을 겨냥한 이야기를 만들 때 작가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반드시 '아톰의 명제(주인공의 외관이 바뀌지 않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경우)' 와 맞닥뜨리게 된다.
<점프>에 '우정, 노력, 승리'의 공식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점프>가 소년 만화의 패권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발명한 것이, 지금까지도 계쏙되고 있는 '토너먼트 배틀 형식'이라고 불리는 이야기 유형이다. 주인공 앞에 강한 적이 나타나고, 노력해서 동료와 힘을 합해 이겨내고, 이긴 후 그 적과의 우정이 싹트고, 좀 더 강한 적이 등장하고, 그에게 도전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라는 형식이다. 실제로 토너먼트 형식의 대회가 그려지기도 하고(하이큐), 차례차례 보다 강한 적이 등장하는 강적의 인플레이션만을 추출해서 다른 설정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이 토너먼트 배틀 형식의 공식은 꽤나 식상한데, 처음에는 초심자였던 주인공이 점점 강해지고, 차례차례 나타나는 적들/갈등요소들 을 쓰러뜨려 간다, 라는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마지막 화까지 패턴은 거의 변함이 없다. 기본적으로 '강한 적이 나타난다', '노력한다', '근성으로 그 녀석을 쓰러뜨린다' 라는 동일한 이야기 형식이 끝없이 반복된다. 독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소년만화에 질려 중간 부분을 과감히 건너뛰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는데, 상당한 부분의 중간 내용을 읽지 않아도 스토리를 따라가는게 크게 무리가 없다.
<열받을만큼 순진한 주인공>
<드랜곤볼>의 손오공 같은, '어쨌든 강해지고 싶다' '강한 적과 싸우고 싶다' 라는 식의 사실상 내면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담백한 성격의 주인공이 점프를 대표하던 때가 있었다.(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음) <슬램덩크>의 경우도 굳이 분류하자면 주인공 강백호의 내면은 담백한 쪽이고, 그 담백함이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라는 설정이다. 성장한다는 건 순수함, 순진함과 반비례한다는 절대적인 법칙을 거스르고 <점프>의 히어로들이 토너먼트 배틀 안에서 성장한 '척'만 하며, 사실상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지내는 부분에서 독자들은 지치고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낀다.
<단적인 예, 겁쟁이 페달>
<소년점프>에서 연재한 만화는 아니지만, 위의 두 요소를 결합시켜 주인공의 성장을 쉽사리 응원하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만화이기에 이야기해보려 한다.
부활동/스포츠소년만화의 특성상, 주인공은 몇 가지 전형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1)평범하거나 모자람 2)노력형보다 즐기는 형 3)파워긍정 4)사기적인 성장력과 흡수력 5)무엇보다 한쪽으로 치우진 기본스탯. 이 상태에서 동료들을 만나고, 라이벌(대부분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주인공과는 다르게 못된 쓰레기 인간성을 가진 먼치킨 캐릭터: 나루토의 사스케, 하이큐의 카게야마)과 대결하며 성장한다. 대개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이 꼭대기 층에 다다르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지를 20-30분 동안 보여주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단련을 하고,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하면서 강해지는데, 결과적으로 시전하는 주인공의 '빠워'가 무지막지하게 강한 사기꾼 수준이어도 주인공과 함께한 시간 때문인지 시청자들은 그 '빠워'에 감탄 내지 정의의 구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층 한층 쌓아올리는 일련의 과정이 소년 만화의 터무니없음을 중화시켜주는데, 겁쟁이 페달에는 그 과정이 없어 모든 게 비약적으로 느껴진다.
일생을 평범하게 지내온 사람이 몇 년간 선수 생활한 사람과 대등한 수준으로 달린다느니, 학교 대표로 선발된다느니. 그것도 별다른 훈련 없이 '나도도 그들과 함께 달리고 싶어. 나만 뒤처질 순 없어!!!'- 라는 외마디 기합과 함께 매번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평소에 엄청난 양의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브남주가 주인공이었다면 재미있었을 수도.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 왜일까, 생각해봤더니, 일본애니 특유의 스포츠 전문성+쇼넨망가 라는 실패할 수 없는 공식을 따랐기 때문.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 <점프>의 재생과 소년 만화의 끝, 우노 츠네히로, 2018]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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