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애니메이션과 2D와 지적인 덕후/2D에 대한 짧고 얕은 끄적임

<주간 소년 점프>와 일본 소년 만화: 성장하지 않는 주인공, 원피스

by '김맹고' 2019. 9. 13.
반응형

지난 게시물에서는 토너먼트,배틀물 안에서 무한대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만화 주인공들에 대한 매너리즘과 그에 따른 소년 만화의 한계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았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가로로 성장하는 관점으로 스토리 전개에 접근함으로서, '아톰의명제'를 벗어나는 시도를 한 최초의 작품, 성장의 문제를 개인 내면의 변화가 아닌 주위와의 관계성 변화로 바꾸어버린 현재진행형 만화인 원피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주간소년 점프에 연재된 원피스 주인공 루피와 드래곤볼의 오공


<원피스, 세로 성장 대신 가로 확장> 

2000년대 <점프>를 상업적으로 든든하게 지탱했던 것이 <원피스> (오다 에이이치로/1997년 연재시작)이다. <원피스>는 2002년에 <점프>가 <매거진>을 발행부수로 다시 앞지를 때 주 원동력이 된 작품으로, 지금도 슈에이샤의 경영 그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장수 연재작이다. 

<원피스>의 특징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세로 성장'이 막힌 황금기의 <점프> 작품과는 달리 '가로 확장'을 택한 것이다. 요컨대 <슬램덩크><드래곤볼>이 토너먼트 배틀 방식으로, 이야기가 피라미드처럼 세로로 성장해가는(척을 한)것에 비해 <원피스>는 오로지 가로로 넓혀가는 접근법을 택한다. 기존의 토너먼트 배틀 방식, 그러니까 적에게 지면 한 번 수련을 거쳐서 다시 싸우면 이기고, 한층 더 수련하면 더 강한 상대에게도 이곡, 좀 더 수련하면 최강에게도 이긴다는 '세로로 성장해 가는' 가치관이다. 게임으로 치면, 잡다한 몬스터를 잔뜩 잡아서 레벨을 올리면 주인공이 점차 강해져서 최종적으로는 최종보스인 용왕이나 대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피스>는 주인공 루피가 계속 강해지는 것보다는, 동료가 늘어가는 쪽에 주제가 자리하고 있다. 즉, 개인이 성장하는 것보다는 동료가 늘어나고 깊은 유대를 맺음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오다 에이이치로는 이런 '가로확장'으로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가 빠졌던 함정을 피했고, 그 방식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다만, 이전의 세로성장 만화와 별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독자들도 많다. 이는 동료가 늘어나며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떡밥들도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채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결국은 질질 끌기 위한 테크닉이 되어 버리고, 당연히 루피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원피스>를 이어가기 위한 비결은 '등장인물을 성장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극중에서는 절대로 사람이 죽는 법이 없다.(총맞아도 튕겨내는 고무인간 루피). 성장이 없다는 건 성장의 끝인 죽음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 오다 에이이치로는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넓히는 접근법으로 '아톰의명제'를 회피하려 했다고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장의 문제를 개인 내면의 변화가 아닌 주위와의 관계성 변화로 바꾸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원피스 60권 즈음, 오다 에이이치로는 그 금기를 깨고 루피의 형인 에이스의 죽음을 그리는데, 이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지시키고 동료들을 해산, 2년 후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그 사이에 캐릭터를 성장시킨다는 대담한 기술을 선보인다. 루피는 자신들의 역량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2년 후에 다시 모일 것을 제안하는데, 이는 작가 본인이 '가로확장'만으로 이야기를 꾸려가는 논리에 한계를 느꼈음을 루피의 입을 빌려 선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옆으로만 퍼져가던 이야기를 세로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한다. 

반응형

댓글